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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다: 하스켈 (Haskell) 로 배우는 프로그래밍

이 메마르기 그지 없는 사막에서, 당장의 갈증을 덜어줄 물 한 모금 되지 못하는 먼 오아시스 얘기는 그저 신기루와도 같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즐거움과 향기에 대하여 목청 껏 외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곳 역시, 사막 한 가운데 놓인 조그만 천막에 지나지 않는 다는 엄연한 사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새로 나오는 Visual Studio 2010에는, 어쩌면 ML의 .NET 판이라고 할 수 있는 F# 언어가 정식으로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런 ML 류의 언어들은 산업에서 이미 확고한 자리를 잡았고, 소프트웨어의 안전성과 성능이 중요한 분야부터 서서히 그 쓰임새를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 이 바닥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가는 “오따구”나 “매니아” 취급 받기 쉽상. 어이가 없지만 내가 일하는 이 곳에서도 그 다지 반응은 다르지 않다. 슬프지만 현실은 현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기술 그 자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와 좋아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더 이상의 즐거움만을 좇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오아시스는 있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에 허덕이는 사이, 이 바닥의 운 좋은 몇몇은 수십년도 전에 그 곳을 찾아내어 선구자로서 고생한 댓가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하스켈로 배우는 프로그래밍

“Programming in Haskell (하스켈로 배우는 프로그래밍)”.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는 내가 썼다. 같은 공을 들일 것 같으면 좀 잘 팔리는 이야기에 이름 석자를 얹어야 할 터인데, 나에게는 꼭 이런 주제들만 인연이 된다. (이 책을 옮겨 쓴 이들과는 인연의 깊이가 적지 않다. 한 사람은 내 후배이자 제자고, 다른 한 사람은 1990년 말 경에, Newsgroup에서 C++와 Functional Programming로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된 동지다. 이 사람은, 2005년부터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박복한 내게는 너무 부러운 일이다.)

하필이면, 내가 꼭 추천사를 써야하는 까닭을 물었더니, MIT의 저명한 프로그래밍 교과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구조와 해석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Computer Programs, SICP)”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시작했으니, 내가 적임자라는 게다. ( SICP는 옮겨쓰는데 4년 이상이 걸렸던 책이자, 내 서른 중반의 열정을 담뿍 담았으되, 끝내 5장은 다른 분이 하셔야 했고, 그러고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책. 그 무엇보다 쉬운 우리말로 써야 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여기저기서 숱한 뭇매를 맞았던 애증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이 책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내게는 동전 한 푼 안 떨어진다. ^^;; )

저명한 수학자의 이름을 딴 이 하스켈 (Haskell)이란 언어가 Microsoft의 기술 연구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직원들 가운데서도 거의 없다. Microsoft란 회사의 이미지가 이런 기술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지 1998년에는 만우절 유머로 “Microsoft And Yale Conclude Agreement To License Technology For Haskell”  같은 글이 우스갯 거리로 인터넷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Haskell 관련 연구 공동체의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Simon Peyton Jones가 Microsoft로 간다고 발표를 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기사 내용대로 하스켈 언어로 COM 스크립트 쓰는 기술, Web Server Page 기술 들이 차례로 학계에 발표되기도 했다. 현재 Microsoft가 내놓고 있는 수많은 관련 기술들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그냥 튀어나온 것들이 아니란 얘기다.

이 책의 추천사에 썼듯이, 오로지 재미로 이 기술을 즐길 수 있는 드물게 복된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MSDN에는 고맙게도 저자인 Erik Meijer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학자와 쟁이들의 동영상 자료가 숱하게 올라와 있다. https://channel9.msdn.com/tags/Haskell/ 

그리고 여러 분이 혹시 모르고 있는 사이, 이 사막 같은 곳에서도 조금 씩 오아시스를 찾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 여느 대학 교수님이 웹 페이지에 썼던 짤막한 글에서 처럼, 나는 솔직히 이 조그만 발걸음이 ‘작은(?) 대세’임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머지 않은 앞날의 주인공 속에 과연 여기의 ‘우리’ 가운데 몇이나 시대를 즐기고 있을까? 과연 우리에게 그런 자격은 있는가?